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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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 하얀 백지 위, 한 땀 한 땀 새로운 것을 수놓다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 패션디자이너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 등은 사람들에게 늘 인기가 있다. 패션디자이너에게 창의성은 필수.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때로 우주의 미아가 된 듯 고독하게 만들고, 늘 어깨를 짓누르지만 그만큼 성취감과 보람이 크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것이 즐겁다면 최범석과 같은 디자이너를 꿈꿔 보는 건 어떨까.
- 패션디자이너란 어떤 직업인가요?
- 쉽게 말해 패션디자이너는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직업입니다. 요즘은 패션디자이너들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어 패션 뿐 만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저는 제너럴아이디어란 브랜드로 맨즈웨어를 디자인하는 남성복 디자이너 최범석입니다. 제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회사들과 여러 분야에서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마케팅이나 컨설팅 등 자문도 해주고 있습니다.
- 어린 시절, 꿈이 궁금합니다.
- 어렸을 때는 꿈이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변변한 새 옷을 입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옷을 물려받아 입으며 자랐고 새 옷을 입는 것은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옷에 한이 맺혀 옷을 좋아하게 된 거 같습니다(웃음). 청소년 시기에는 방황이 많았고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번 돈을 모아 제가 좋아하는 옷을 사서 입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 옷이 좋았습니다. 남는 시간엔 책방에 가서 다른 나라 옷들을 찾아 다니며 스크랩을 했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얼마 모은 돈으로 노점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고, 이후에 동대문에 가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매우 바쁘실 것 같은데요,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 오전에는 어제 매출을 보고 회의를 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오후엔 디자인 스케치를 합니다. 저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0개 이상의 디자인 스케치를 합니다. 항상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그리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다음 시즌 컨셉에 대해서 고민하고 리서치를 합니다.
- 일을 하면 이 일을 하길 잘 했다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 길에서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을 볼 때와 TV에서 내가 만든 옷을 유명 연예인이 입고 나올 때, 열심히 준비한 패션쇼를 보고 나서 기자들이 좋은 글을 써 줄 때 등 사람들이 제 노력을 인정해 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2009년부터 뉴욕 콜렉션에 참가했을 때는 WGSN이라는 패션매거진에서 뉴욕 컬렉션 BEST5에 제가 만든 옷을 선정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에 제 디자인을 선보이고 호평을 받을 때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그리고 <패션왕 시즌2>라는 방송에서 우승한 것 또한 매우 기쁘고 보람 있었습니다.
-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인가요?
-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작은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또 내가 디자인한 옷들이 팔리지 않을 때는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을 파는 사람이라 이럴 때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 옷 만드는 걸 배워본 적 없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옷을 좋아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스스로 배워 디자이너가 된 겁니다. 매일 같이 원단 시장에 나가서 원단을 공부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공장에 가서 옷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런 노력이 저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패션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나 자질은 무엇일까요?
- 좋은 것, 예쁜 것을 아는 것이 이 일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즉, 센스와 감각,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디자이너에겐 좋은 테이스트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많은 직업이지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투지와 옷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 평소 더 나은 자기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 꾸준히 메모하고, 꾸준히 그 메모를 지켜나갑니다. 스케치를 많이 하고 옷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댄서는 춤 연습을 많이 하고, 가수는 노래 연습, 디자이너는 옷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것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가장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 이미 해외 진출을 해서 해외에도 매장들이 있지만 전 세계, 보다 많은 나라에서 제가 디자인 한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꿈입니다.
- 이 일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려요.
- 패션디자이너는 단기간에 빨리 이룰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긴 시간 숙련이 필요하고 시행착오와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하는 직업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꾸준히 오랫 동안 옷을 사랑하며 디자인 작업에 매진한다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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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는 직물, 가죽, 비닐 등 여러 가지 소재로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란제리 등의 옷을 디자인한다. 통상 시즌이 시작되기 6개월 전부터 해외의 패션 흐름 등을 분석하고, 유행 경향, 재료, 색의 조화 등에 관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새로운 의상디자인을 기획한다. 기획된 모든 자료를 기초로 디자인을 설계하고 샘플 제작서를 작성하며, 소비자의 성별과 연령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도식화(일러스트화)한다.
디자이너가 그린 도식(일러스트)은 옷을 만드는 작업장으로 보내져 견본 의상으로 제작되고, 견본 의상을 입어 보는 피팅 모델을 통해 옷의 착용감 등을 파악한 후 디자인의 수정 보완을 거쳐 실제 제작에 들어간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이나 대학교에서 의상디자인학, 패션디자인과, 의류(의상)학 등을 전공하면 유리하다. 사설교육기관에서 패션디자인, 의류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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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KFood외교관
우리의 한식을 세계인의 식탁에
윤상진(42세) | 창직 아이템 : K-Food 외교관
K-Food 외교관은 한식을 알리는 직업인가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직업입니다. 전 대학에서 호텔요리를 전공했었고 계속 조리나 제과제빵관련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족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잘 생활하는데 음식이 아주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이 잘 안통하고, 생각이 달라도 같은 음식을 먹다보면 공감대도 형성되고 정도 들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관심분야를 접목하여 생각해 낸 아이템입니다.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에게 한식 요리법도 가르쳐주고, 이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한국요리를 알리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전에도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법 강좌 같은 것을 했었는데 좀 더 저만의 아이템으로 차별화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인의 경험이 창직 아이템으로 발전한 경우네요.
네 그렇습니다. 전 제과제빵공장도 운영했었고, 요리 강좌도 운영했었고 음식과 관련한 여러 일을 했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창업에 줄곧 관심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식당이나 외식업은 경쟁도 심하고,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문을 많이 닫는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음식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요리와 관련된 일을 좋아하고, 잘해서 계속 이분야 일을 했었지만 큰 만족감이 들지 않아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하게 되더군요. 저의 경험과 관심을 녹여서 담되, 차별화된 것이 없을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창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직관련된 세미나, 수업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참여했고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해서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다른 요리관련 직업과 차별화전략은 무엇인지요?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지금 방문요리쉐프과정도 따로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출장요리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가정에 방문하거나 교육강좌를 열어서 한국요리도 알리고, 또 음식과 관련한 한국의 문화도 함께 알리고 싶습니다. 설날에 먹는 흰떡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지역별로 김치는 어떤 특색이 있는지 등 음식과 우리 문화를 함께 알리는 스토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점이 기존의 조리사 영역과 차별화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음식조리법을 알리고, 재료손질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식과 문화를 함께 알리고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고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싶습니다.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요?
요리 전공도 했었고 다양한 분야의 외식업에도 종사했었지만 계속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려 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K-Food 외교관이라는 창직 아이템이 당장은 수익창출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직을 하신 분 가운데 모든 것이 쉬웠다는 분은 안 계시더군요. 창직특강이나 수업에서 여러 분을 만났는데 모두 고생하신 경험이 다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제과제빵분야에 취업하여 일을 하면서 다문화 가족이나 외국인을 위한 스토리가 결부된 요리 아이템을 개발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병행하고자 합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께 한마디 전하신다면?
저도 이제 시작단계여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창직계획서를 적으려하니 막막하더군요. 취업이나 창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템 개발이 어려웠습니다. 창직하신 많은 분들을 만나뵈니 본인의 경험을 살려야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더욱이 중장년층은 기존의 경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는 상당한 부담과 위험이 따른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본인의 업무경험, 혹은 그동안 취미나 관심사로 접해 본 경험이 있는 것들을 창직아이템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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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푸듀케이터
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환경, 건강, 농업, 지역경제 등의 사회적 문제를 식생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식생활 교육 콘텐츠와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직접 운영하며,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양, 칼로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인 다각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말합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외국에서 식문화 운동인 슬로푸드를 배우고 와서 한국에서도 식문화를 바꿔보고자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는 일이라 깨달았고 그 방법으로 식생활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존의 국내 방식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즐겁게 식생활의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음식,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재학 시절 부전공으로 외식산업경영을 선택했고,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과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전공인 통계학보다는 음식과 관련된 분야의 일이 내게 더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학연수를 빙자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외국의 식문화를 직접 살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눈길을 끄는 식당이나 카페 등을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무급으로 일도 했습니다. 특색 있는 메뉴와 컨셉을 살필 수 있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여러 나라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귀국해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외식업체에 취업을 했지만, 이미 외국에서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하고 온 내게 우리나라 외식업계,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체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때 썬앳푸드라는 외식업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건강식품이면서 한국인의 식단에 빠질 수 없는 마늘을 주재료로 삼고 있지만, 메뉴는 외식 트렌드에 맞는 이탈리안 푸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죠.
색다른 시도를 하는 이 기업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온라인을 통해 대표에게 직접 나를 소개하는 내용과 입사를 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의 적극적인 액션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고, 2년 여간 그곳에서 일했어요. 사실 한 기업의 대표에게 일해보고 싶다고 직접 제안한다는 것이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생각에만 그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해요. 행동하지 않으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당시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기에 홍보, 프로모션, 고객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경험은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미디어를 다루는 방법, 홈페이지 관리나 홍보 노하우 등을 깨칠 수 있었죠.
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면서 음식과 관련한 일은 분명 좋아하는 일이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분야지만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습니다. 또, 음식과 관련된 일은 왜 조리, 음식점 경영 정도에 국한되어 있을까. 왜 더 다양한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건강한 음식, 건강한 식문화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던 중, 슬로푸드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통해 내 몸뿐 아니라 환경까지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가서 슬로푸드 철학을 기본으로 한 음식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미식과학대학)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융합한 전혀 새로운 장르의 학문을 접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가치관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고,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 리포터 등으로 활동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요.
또 그간 쌓아둔 인맥을 통해서 강의 요청이 자주 들어왔습니다. 식문화, 식습관, 건강과 식생활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이러한 내용은 유학하면서 항상 고민하고 공부했던 터라 자신있게 할 수 있었죠. 문득 이 일이 내가 찾던 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 교육, 좋은 식문화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찾고 나아가서는 환경을 되살리도록 교육하는 것. 이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면서, 먼 곳까지 가서 치열하게 배우고 온 일이고,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요. 게다가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부모와 자녀의 대화단절,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 등 각종 사회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식생활 교육, 밥상머리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었어요. 저는 이 일을 나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전공을 바꾸고, 미국과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야말로 나만의 일을 내 스스로 찾아낸 셈이에요.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현대 식문화에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으며 이뤄지던 밥상머리교육의 부재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이슈화 되고 있고 편리함과 속도 위주의 식품의 섭취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바른 식생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011년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학교, 단체에서 식생활이 점점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진행할 식생활 전문 교육 강사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관련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었죠.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간간히 들어오는 요청에 따라 강의를 하다가 남양주 시청의 제안으로 2년 여간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슬로푸드, 건강한 식습관과 관련한 교육사업과 행사를 기획하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곧 민간 차원에서도 수요가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가는 두려움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렵다고 안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바른 식문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개인적으로 결정력, 결단력이 있는 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바빠지고,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많지 않았죠.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 확신하는 일에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고 차근차근 일을 완성해 나가는 성향은 일을 완성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 음식과 관련된 푸드스타일리스트, 외식업체 마케터, 음식전문리포터 등의 다양한 경력과 경험들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부의 전공은 통계학이었지만, 학부 때부터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외식산업경영을 부전공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석사를 이탈리아 슬로푸드 대학인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을 통한 음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꾸준히 글을 쓴 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회사를 홍보하는 데 필요한 보도자료나 회사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칼럼을 쓰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죠. 푸듀케이터는 내가 1호니까,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푸듀케이터가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강의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짜는 일 외에 관련 내용으로 책을 쓰고 기고도 하는 직업인이지요. 저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앞으로 일을 하려면 스피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 과정을 듣기도 했어요.
지금 푸듀케이터로 대중 앞에서 강의를 하고, 한 회사의 대표로 언론이나 미디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이때 연습하고 단련한 덕분이라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내가 내 일을 찾아 나서기까지 모든 과정들은 ‘단련’이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원으로 일하며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는 것이었죠. 내가 스스로 내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미래가 핑크빛일지 아닐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 선례가 있지 않아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중들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여기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도 분명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과연 식생활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줄까? 밥상머리 교육, 미각교육의 필요에 대해 공감해줄까? 이런 생각이 계속되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 스스로 찾아내고 선택한 일이니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또, 이 일은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마인드콘트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비용을 따져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선택을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능력, 결단력,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중요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세 차례 지원했다가 한 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800만 원의 지원금(활동비, 사업비, 홍보비, 교육컨설팅비)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식문화 교육’이라는 주제가 새로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개 음식 분야에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제조업에 머물렀거든요. 검색하다 보면 청년층에게 지원금을 주는 여러 제도가 있는데요, 지원금을 받는 데에는 사업계획서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업계획서를 부실하게 작성하면 그 내용이 잘 전달될 수가 없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외국의 사례를 많이 수집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고, 전화로 문의를 하다 직접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탈리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인터넷으로 미국 사이트를 검색하다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슬로푸드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할 때에도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자료나 안내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관련 분야에 인맥을 얼마나 형성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그 직업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배경과 환경, 사회적으로 필요가 있어야만 일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회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내야 합니다. 무작정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일을 매치시켜야 겠죠. 저 같은 경우는 요리가 좋고, 음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회문제, 사회적 필요를 파악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습니다.
마침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인데 왜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을까? 내가 해야겠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겠다’ 이랬던 겁니다. 눈을 넓혀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좋은 직업을 떠올렸다면 그런 사례가 있는지,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직업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나 공부들이 어떤 것인지, 그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찾아 배우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 직업을 필요로 할 수요처에 대한 파악과 그것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인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음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경력을 쌓으며 맺어진 인맥과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직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 이 직업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찾았고, 조직의 형태가 비영리사단법인이라고 판단하여 사단법인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풀무원이라는 식품회사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인정하고 관심을 갖고, 사업을 의뢰해 주었습니다. 제가 식생활 교육을 골자로 하는 교육업체를 만들려고 여기 저기 도움을 받을 곳을 알아보던 중, 희망제작소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마침 식품회사 풀무원이 희망제작소 쪽에 기업의 사회공헌 측면에서 ‘바른 먹거리 교육’을 하고 싶다고 자문을 구했고, 희망제작소가 중간 역할을 해서 제가 준비하고 있던 ‘푸드 포 체인지’(그때는 ‘푸룻’)가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교육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짜 기업이 큰 회사와 함께 실무를 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게다가 기업의 이런 이력도 좋은 홍보거리가 되거든요.-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이 직업이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남들에게 잘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스스로를 푸듀케이터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하자면 ‘식생활교육가’ 정도로 부를 수도 있었지만, 음식과 관련한 모든 영역을 다루며 이를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는 ‘식생활교육가’보다 푸듀케이터가 제한이 없습니다.
식생활교육가는 식생활에 국한된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물론 주된 내용은 그 부분일 수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고, 저는 그렇게 할 거거든요. 그리고 처음 이 직업을 접하는 사람이라도 직업명만 들으면 음식과 교육, 이 두 분야를 아우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는 험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의지가 중요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일, 혹은 구체화 되지 않았던 일을 전문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스스로가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카를로페트리니 회장입니다. 여러 가지 교육과 캠페인, 이벤트 등으로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고 식문화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명사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확신하는 일이나 결심한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결과를 만듭니다. 결정한 일은 다시 고민하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식문화를 개선하여 바른 식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자인 제가 어린 나이에 세 차례나 외국에 나간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음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요리사, 음식점 창업 외에는 없어보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행동력, 다양한 경험은 창직에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고민을 많이 하면 실천에 행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직접 부딪쳐보고 좋고 싫음을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기회비용을 잘 따져 포기할 것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나눈 다음에 결단력 있게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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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난독증전문가
김은희 | 한국난독증 연구소 대표
은희야, 넌 이렇게 살 애가 아니야...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강의실에서 공부만 하기에는 불편한 시대여서 동아리회장, 학교 대표로서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전공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을 수가 없었고 불문학 전공으로 취업을 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대학졸업 직후 바로 결혼해서 1남 1녀를 낳고 아파트 평수 늘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아줌마로 살아가던 그러던 어느날,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모처럼 집에 놀러왔는데 계속 해서 쉬지 않고 해대는 시댁과 자식이야기, 아파트나 땅 이야기, 그러다가 왠지 우울하고 화가 많이 난다는 나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듣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은희야, 너는 이런 애가 아니야, 너는 이렇게 살 애가 아니야” 진심으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친구를 보며 순간 부끄러움이 확 몰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야, 이런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야, 20년 후 분명 나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우울해 질거야, 하지만 아이들이 이제 4살, 8살인데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뭘 해보려고 해도 돈도 없고....
친구를 만난 그날부터 ‘나는 누구일까? 나의 예전 모습은 어땠을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의 나의 모습이 내가 나이 들어서도 만족스러울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기사를 보았는데 미국에는 언어치료사가 활발한데 국내에는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으로 빛이 반짝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 이거야 내가 언어에는 좀 소질이 있잖아,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대학 때 그렇게 소외계층 어쩌구 했는데 이런 소외받는 장애아들을 치료 한다면 좋겠구나 그리고 아직 이런 직업군이 없다고 하니 앞으로 전망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그리고 난독증 전문가가 되기까지...
1994년쯤 신문기사를 통해 발달장애아치료전문가 과정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강좌를 들으면서 언어치료사도 별도로 취득하고, 평생교육원을 통해 사회복지사도 취득하고 건강가정사도 함께 취득하였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니 심리학이 반드시 필요했고, 다시 평생교육원의 학점은행제 심리학과정을 등록하였습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나의 문제의 원인에 대한 통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 아동과 부모의 심리에 대하여 좀 더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으며 임상심리사 시험에도 합격하여 심리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 커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20여 년간 발달장애, ADHD, 학습장애 등을 치료하면서 아무리 열정을 다해 가르쳐도 좋아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던 중 많은 학습부적응 학생들의 문제가 단순히 게으르고 산만하고 자기주도적이지 못하고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난독증이라는 신경생리학적인 문제로 인해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학습부진 대책이 있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데도 해결이 되지 않고, 학습부적응이 학교부적응과 학업중단, 사회부적응으로 연결이 되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에 분포되어 있는 난독증 아이들을 도우려면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사회전반적으로 난독증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워
아직 난독증에 대한 선별조사 조차도 안 되어 있어 난독증 학생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엄마들도 단지 공부를 못할 뿐인데 무슨 학습장애라고 못박는 건 아닌지 또는 이름도 생소한 난독증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관련되는 교수들에게도 질문을 했지만 이미 특수교육에서 학습장애 부분으로 하고 있었다 라든지 언어치료에서도 이미 언어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굳이 난독증 전문가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고 독서치료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 영역이라고 주장하거나 교육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도 학습부진이나 이에 따른 학습코칭은 이미 자신들이 해오던 분야라고 주장하여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합하고, 그에 따라 난독증 학생들을 돕기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고 난독증 바우처를 만들어 난독증 전문가가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며 교육청별로 난독증 선별 및 심화검사를 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교사, 학부모, 담당 공무원들을 상대로 인식전환을 위한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좀 더 체계적으로 난독증 분야를 전문화시키고 한국적 도구개발도 하기 위하여 뜻을 같이 하시는 전문가들과 함께 난독증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학에도 난독증 치료학과 개설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모든 교육관련 분야에서 난독증 전문가가 일 할 수 있는 많은 장을 만들어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난독증 전문가 역시 끊임없는 공부와 애정이 필요한 직업
저의 경우는 창직에 앞서 우선 배출한 전문가들이 합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법률과 바우처라는 제도, 교사나 학부모의 인식전환, 교육청에서의 난독증에 대한 인식과 전수조사 및 전문가를 통한 치료방법 모색 등을 할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우선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난독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교육과학부에서 전국 8,500명 대상으로 한 난독증 선별검사를 하였고 이에 따른 전문적 심화검사와 함께 치료를 담당할 전문가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법률 제정 이후 난독증에 대한 진단도구도 많이 출시가 되고 있고 후속 연구가 뒤따르고 있어서 예전보다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난독증 전문가가 되면 난독증이라는 제도와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관련 공무원, 전문가들, 학부모에 대한 인식전환에도 노력을 해야 됩니다. 생소한 개념이라 한 번에 안되면 수회를 반복해서라도 납득하실 수 있을 때까지 설명을 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난독증 전문가는 언어, 두뇌신경생리학적 지식, 심리 등의 지식이 골고루 필요한 분야입니다. 전문가로 인정을 받으려면 경험과 함께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와 도와주면 극복이 가능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난독증 아동·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이들을 돕기 위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학문에 대한 끊없는 호기심과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돕기 위한 열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독증 아동의 문제를 훗날 사회적 문제와 결부하여 이해하고 도움을 줘야 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저를 채찍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많은 일을 해낸 데에는 결코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었는데 관계를 가졌던 학부모들과의 계속되는 교감과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교육관련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부분의 학생들의 문제와 그 원인을 찾아보는 과정들이 도움을 줬고 여기서 알게 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지지를 해주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많은 경험과 좌절이 창직의 원천
어느 날 혼자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단번에 창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20여 년 동안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끝없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결과 난독증을 알게 되었듯이 경험과 좌절 등을 통해서 새로운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직과 확산에 있어 주변의 우호적 지원군을 많이 만들고 함께 해나가야 되며 그동안 해오던 것들의 복제가 아닌 좀 더 창의적이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더욱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진화를 해야 창직이 자리를 잡고 사회에서 도움이 되는 분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괴테가 말했습니다. ‘재능은 고독속에서 이루어지고, 인격은 세파 속에서 이루어진다’모든 일은 첫발을 내딛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암스트롱처럼 누군가는 좌절과 고독을 이겨내고 첫발을 내딛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선택하는 그 순간 이루어진다’ 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열정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 성취가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찾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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