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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2013년 10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4년 전 가을입니다.


직업군인으로 22년을 근무하다가 계급정년으로 40대 중반에 퇴직을 앞두던 시절. 확정된 퇴직예정자의 삶은 외롭고 비참했습니다. 마치 선고받은 사형수처럼.
동료와 후배들의 무시, 가족의 외면...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역할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은 저를 우울증에 빠트렸습니다. 전역예정군인을 위한 전직교육을 받으면서 내내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중 워크넷에 입사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워크넷은 당시 제게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였습니다. 그만큼 공신력 있는 직업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워크넷에 올라와있는 직장들이라면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진급에서 실패한 후 2,3년간을 워크넷을 검색해왔고, 회사에 대한 자산규모와 안정성 등 기업정보와 평가수준도 나와 있어서 각 회사들의 비전과 근무여건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검색했던 직장의 조건은 ‘정규직’, 그리고 월 ‘250만원’. 두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직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처럼 사회경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특히, 군인 출신을 선호하는 직장은 없었습니다. 기술도 없고 회사경력도 없이 자존심만 강한 중년의 군인을 좋아하는 회사가 있을리 없지요.
제대군인이 지원할 수 있는 군무원 시험이 있었지만, 청춘을 군대에서만 보냈는데 평생 군대 주변에만 맴돌며 삶을 마감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군무원은 10년을 더 일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저는 20년 이상을 일할 수 있는 자격과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워크넷 직업심리검사는 제 직장을 다시 판단하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제 적성이 영업이나 관리보다는 감성을 요구하는 서비스직이나 기술직에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그 기준으로 다시 직장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직장이 보였습니다. 공원묘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이었습니다. 장례업계는 제 직업심리검사 결과에도 맞는다고 나온 분야였기에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워크넷에서 제시하는 입사지원서 작성요령을 공부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원하는 직장에 입사 후 포부와 사업의 전망, 업무추진계획까지 세워서 제출했으니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메일을 보내놓고는 마치 시험을 마친 수험생처럼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지방에서 취업교육을 받고 있는데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재단법인 000입니다. 면접 보러 이번 주에 오실 수 있나요?"
그 목소리는 제 오랜 앙금 같은 것을 씻어내는 청량음료와도 같았습니다.
"네 오늘이라도 바로 가겠습니다.”
대답하고는 버스에 택시를 갈아타고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공원묘원을 관리하는 곳이다 보니 사무실이 산 중턱 조용한 곳에 있었고 그것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면접은 미소가 따뜻하신 여자분 이사장님과 이사님이 보셨고, 저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합격통보!


군대에서 진급 실패 후 몇 년간을 패배자처럼 보냈던 제게 그 통보는 이제 다시 시작하라는 구령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제2의 직장생활.
2년간의 사무직을 거쳐 지금은 비석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기술직으로 보직을 옮겼습니다. 늘 기술자를 꿈꾸던 제게 직장에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비석을 최신 기계로 제작하는 기술을 제게 가르쳐주기 위해 중국에 가서 CNC (컴퓨터수치제어장치)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해외출장의 기회도 주었고, 장비 프로그램 운용과 일러스트, 포토샵 등 컴퓨터 실력이 부족해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계속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직장에 다니는 중인지 기술연수를 받고있는 중인지 구분이 안갈 때도 있습니다.


아직 직장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지만 드릴 하나 만질 줄 모르던 저를 국내에 몇 명 안 되는 고급 석재기술자로 키우기 위해 도와주고 기다리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재래식 비석뿐만 아니라 사진과 문양과 캘리그라피로 아름다운 추모비를 만드는 예술가, 석재 디자이너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제가 워크넷을 검색했을 때 월급과 정규직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젠 기술이라는 재산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랜 군생활의 실패로 칠흑 같은 터널을 걷고 있던 제게 드넓은 평야와도 같은 지금 이 직장으로 안내해준 워크넷.
직업심리검사로 제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정확한 직업정보로 안전한 길로 유도해준 것이지요. 초조함과 불안감의 탈출구가 되어준 워크넷이 있었기에 지금의 은인 같은 직장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고 취업률이 낮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나의 삶을 일반화에 빠트리지 말고, 특별한 케이스로 만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인연은 우연히 찾아온다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의 필연 끝에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인연을 워크넷을 통해 찾았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중장년 취업을 위해서는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기본이며, 자신의 경력을 인정해줄만한 직장을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랜 군 생활을 통해 강한 체력과 인내심, 조직에의 충성심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주말근무나 명절근무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점이 이 직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이든 명절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상을 당해 장지로 오는 분들이 있으면 근무를 해야 하는 이 곳 특성상 저 같은 사람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던 것이지요.

사무직을 고집하기보다는 컴퓨터 기술과 장비가 연계된 기술직을 알아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중장년에게는 청년에게 없는 강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력과 희생정신입니다.


청년이 갖지 못하는 오랜 경험으로 원숙한 통찰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줄 수 있으며, 4,50대의 가장이라는 위기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배수진이 됩니다.
20대는 엄두도 못내는 힘든 일을 50대는 해낼 수 있지요. 체력이 아닌 정신력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5,60대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중장년의 강점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야 합니다.


또, 입사 초기에 다소 대우가 좋지 않더라도 일단 취업한 후에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로 직장을 선택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입사 후 3년 만에 파격적인 월급인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직장의 배려로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지만, 남보다 더 노력한다면 누구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워크넷 취업정보는 짧은 기간 검색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저는 퇴직을 준비하면서 2년 이상의 기간을 매일같이 워크넷과 함께 하면서 시시각각 탑재되는 취업정보를 검색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월급과 여건이 되는 직장이 없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검색조건을 다양하게 설정하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워크넷은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 내 폰의 바탕화면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대기업과 다르게 중소기업이나 법인의 채용은 특정한 시기가 정해져있지 않고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퇴역군인이라는 특수성으로 제대군인 기관과 고용지원시설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워크넷 만큼 정확하고 알찬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닫혀있는 문을 오랫동안 쳐다 보느라 우리를 위해서 열려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는 헬렌켈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4년 전의 저처럼 실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빠져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미 닫힌 문을 더 이상 바라보지 말고 빨리 다른 쪽의 열려있는 문을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게 워크넷의 정확한 직업정보와 직업심리검사는 그‘다른 문’을 찾는 등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게 비전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직장. 그리고 이런 직장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워크넷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