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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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응급구조사 유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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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슈퍼맨’
응급구조사 유영보
- 몸과 마음을 항상 안전하게 지키면 좋겠지만, 사건, 사고는 의도하지 않게 불쑥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위협한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심장마비, 교통사고 등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전화 한 통이면 한 달음에 달려와 응급조치를 하는 이들이 있다. 응급구조사다. 사명감, 인내심, 그리고 체력을 겸비한 이라면 도전해도 좋다.
- 응급구조사란 어떤 직업 이고 현재 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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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구조사는 교통사고나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응급환자를 구조하고 병원까지 이송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일을 합니다. 응급구조사는 1급과 2급이 있는데, 응급구조사 1급 자격을 가지면 의사의 오더를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업무영역은 소방서, 병원 또는 의료단에서 활동할 수 있어 범위가 넓은 편입니다.
소방서에서 활동하려면 병원에서 경험을 5년 이상 쌓아야합니다. 저는 강남소방서 구급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1급 응급구조사 유영보 팀장입니다. 15년간 구급대원 활동을 하다 현재는 구급 및 구급대원 차량 장비를 관리하는 구급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이 일을 시작하신 동기와 관련하여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저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은 공무원 또는 선생님을 천직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릴 적 꿈은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구체적인 꿈을 갖기보다 부모님 뜻대로 공무원을 장래희망으로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3 대학 입시 때 담임선생님께서 “신설학과가 생겼는데, 비전이 있는 직업이다. 한 번 가보지 않을래?”하며 추천해 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저와 잘 맞는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응급구조사 직업이 처음 생겼습니다.
- 하루 일과는 대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 응급구조사로서 소방관 업무를 하고 있는데, 보통 3교대 근무를 합니다. 주간에는 출동과 응급구조 업무가 주가 됩니다. 또한 공무원의 신분으로, 공적인 업무도 많아 봉사나 국가적인 행사에 지원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무는 현장 출동 업무인데요. 출동이 없을 시간에는 장비 관리, 소모품 의학 약품을 관리하고, 구급차 청결관리와 소독 감염관리실에서 소독을 하기도 합니다. 출동 나가는 시간을 빼고는 모든 시간은 ‘출동을 위한 준비시간’ 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습니다.
- 일을 하며 이 일을 하길 잘 했다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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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대원 때의 일입니다. 어떤 여성분이 배가 아프다하여 신고를 받아 출동했습니다. 출동해보니 단순히 배가 아픈 상황인줄 알았는데, 변기 안에 아기를 낳아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으셨더라고요. 보통 만삭에는 아기는 쉽게 낳기 힘든데 대략 8개월 정도 되는 미숙아를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아기가 사망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기를 거꾸로 들어보니 아기가 움직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산소공급하고 보온해서 엄마 배에 올려놓고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생명을 구했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신고자가 본인이 너무 아프다고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신고자가 차에 시동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액셀을 밟고 문이 잠긴 상태로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본인이 신고를 하고 쓰러진 상태였죠. 도착하자마자 차 유리를 깨고 차량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생명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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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응급구조사 1기생이라 소방서에 들어오려면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경력을 쌓을 병원에서는 응급구조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사람에 생명까지 다루는 건 아니지만 의료행위를 하는데 응급구조사를 어떻게 믿고 환자를 맡길 수 있나 고민했습니다. 의사도 아니며 간호사도 아닌 그런 상태여서 취직하기 너무 어려웠는데 요즘은 병원에서 인식이 좋아져 경력을 쌓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허무맹랑한 장난전화나 술 취한 사람들, 난폭한 사람들 가끔 구조대원들을 폭행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또 하나, 모든 구조대원들이 제일 힘든 것은 잠을 못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3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2교대로 일하다보니 이틀에 한 번씩 날을 세서 한 달에 보름은 날을 지새워야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 항상 대기하시는 일이라 힘드시지는 않으세요?
- 예전엔 ‘5분 대기조’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5분 걸리면 큰일 납니다. 출동 벨이 울리면 바로 출동하는데 사고 탈출 20초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 이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인내심’과 ‘사명감’과 그리고 ‘친절한 화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환자분들은 저희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드리러 가는 건데, 굉장히 저돌적으로 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음주자분들도 많아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자주 있어서 인내심과 상대방과 부드럽게 대화할 수 있는 화술 이런 것 등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팔이 부러져 응급처리를 완벽하게 잘했다고 해도 이런 상항에 대해 환자에게 잘 설명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친절히 설명을 드려야 합니다. 일단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명감, 넓은 이해심 그리고 친절함으로 보호자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평소 더 나은 자기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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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 응급구조단은 자체적인 테스트가 있습니다. 상하반기 테스트를 해서 자신의 근무평점에 포함되며 이론시험도 봅니다. 이론시험은 책자 및 내용들에 대한 숙지사항을 시험 보는데 청에서 직접 시행하는 전국적인 시험입니다. 끊임없이 이학적인 내용이나 CPR(심폐소생술)과 같은 것들의 방법이 변경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숙지 및 처치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저는 심폐소생술 연습을 꾸준히 합니다. 연습으로 손 감각을 키우다 보면 심폐소생술 테크닉이 좋아져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정말 잘하는 응급구조사 분들은 응급 환자분들의 생명을 많이 구하세요. 심정지 환자들은 구급대원을 잘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의학적인 지식을 쌓으려고 항상 공부를 합니다. - 일을 통해 가장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 궁극적인 목표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구조 일을 하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밤에 잠을 못자는 것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체력을 키우려면 충분한 휴식과 고른 음식섭취, 충분한 운동을 통해 체력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 사명감, 인내심, 체력을 겸비하고 있고 본인의 적성에 맞는 다는 생각이 든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직업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아이가 이 일을 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긍지와 보람, 희열이 큰일이라 좋은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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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구조사
응급구조사는 상담이나 구조 업무를 수행하며, 법령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현장의 응급 처치, 환자의 이송 그리고 의료 기관 안에서 응급 처치를 한다. 응급 환자의 신고 접수를 받으면 구급차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현장에 출동하여 환자의 상태를 자세하게 측정 파악한 후 필요한 응급처치를 한다. 응급 처치가 끝난 후 응급 의료 시설로 환자를 이송하고 응급처치 상황과 부상자의 처치 내용을 기록하여 응급 센터나 담당의사에게 서면이나 구두로 보고한다.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 평소 차량과 장비의 안전 점검을 실시하며, 환자의 응급 처치에 사용되는 의료용품을 점검 하여 교체하거나 보충한다.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및 대학교에서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하는 것이 유리하다. 서울시소방학교, 중앙소방학교, 경기도소방학교, 국군군의학교, 교육양성기관에서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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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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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프리마켓기획자
소중한 재래시장을 만드는 기획자
김성규 | 창직아이템 :프리마켓 기획자
프리마켓을 기획하는 일... 어떤 일인지요?
흔히 마켓이라고 하면 마트나 가게를 떠올릴 수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프리마켓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마켓이나 시장입니다. 유럽의 벼룩시장처럼 거리에서 특별한 아이템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소섭외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곳이 바로 재래시장입니다. 현재 전국에는 1,500여 개의 재래시장이 있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주요 시장만 해도 600~700개에 이릅니다. 최근 재래시장이 현대화되고 하드웨어는 많이 변했지만 소프트웨어는 부족합니다. 재래시장의 상가를 임차하여 그 가게에서 기획전도 열고 이것을 SNS을 통해 홍보해주고, 매출을 올리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직접 가게를 임차하여 운영할 수도 있고, 혹은 다시 가게를 일시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들께 임대해 주는 것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재래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면서 신선한 아이템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에 기여하고 싶습니다.프리마켓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있으신지요.
원래 예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생각해왔던 아이템입니다. 대기업에도 다녔었고 여러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경험도 있었는데 이때 반품물건을 처리하기 위해 프리마켓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이베이와 함께 영업하는 온라인몰을 운영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소 생소한 분야여서 구체화시키질 못하다가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좀 더 아이템을 좁히고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참여한 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래시장분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재래시장 안에서 튀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창직을 위해 그동안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다른 기관의 프리마켓 기획자 과정에 참여하면서 같은 고민과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서울시의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한 것도 저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구체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의만 듣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막상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니까 어려움이 있더군요.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알고 찾아보고 해외 직업도 찾아 견문을 넓히려고 했습니다. 저희 세대가 알고 있는 직업분야가 제한적이다 보니 창직을 하려해도 영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창직만 추구하다 보면 뭔가 새로워야한다는 것에만 집착하기 쉬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향후 계획은 어떠신지요.
우선 서울, 경기를 시작으로 할 예정입니다. 재래시장 기획을 준비하면서 당장은 백화점 꼭대기층을 빌려서도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것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물론 재래시장과 백화점은 구매계층도 다르고 특징도 다르지만, 둘 다 ‘기획’에 승부를 걸려고 하기 때문에 저의 기획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시도나 의도가 좋다는 생각은 들지만 솔직히 프리마켓 운영으로 큰 수익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프리마켓 창직자를 키우는 일도 동시에 하려 합니다. 창직 모델을 만드는 것이지요. 현재 U.F.O라는 프리마켓 기획자들이 모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30대부터 50대까지 프리마켓에 관심있는 11명이 모여있습니다.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어떤 사람은 기획에, 어떤 사람은 판매에 관심이 있기도 해서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서 시너지도 발휘되고 있습니다.
프리마켓은 기획과 아이템선정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고, 사람들의 타겟에 맞는 아이템을 잘 선정하고 홍보도 잘 해야겠지요.창직을 준비중인 중장년층에게한마디 전하신다면?
나이든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다보니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으려 다니려고 하고 새로운 것에는 거부감이 있기도 하지요. 또 중장년들은 리스크를 우려해서 의사결정을 하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창직은 오히려 중장년층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므로 긴 호흡으로 느긋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발명을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아이템을 골라 고민해보고 시행착오를 하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실패도 좋은 경험이므로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창직을 준비하다보니 사고의 폭이 넓어진 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기획아이템을 찾다가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으면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창직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아무래도 본인의 경험과 관련있는 분야에 창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완전 새로운 분야로 창직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본인의 노하우와 경력을 믿고 그 안에서 창직을 해야 결과물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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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푸듀케이터
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환경, 건강, 농업, 지역경제 등의 사회적 문제를 식생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식생활 교육 콘텐츠와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직접 운영하며,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양, 칼로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인 다각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말합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외국에서 식문화 운동인 슬로푸드를 배우고 와서 한국에서도 식문화를 바꿔보고자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는 일이라 깨달았고 그 방법으로 식생활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존의 국내 방식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즐겁게 식생활의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음식,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학 재학 시절 부전공으로 외식산업경영을 선택했고,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과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전공인 통계학보다는 음식과 관련된 분야의 일이 내게 더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학연수를 빙자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외국의 식문화를 직접 살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눈길을 끄는 식당이나 카페 등을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무급으로 일도 했습니다. 특색 있는 메뉴와 컨셉을 살필 수 있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여러 나라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귀국해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외식업체에 취업을 했지만, 이미 외국에서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하고 온 내게 우리나라 외식업계,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체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때 썬앳푸드라는 외식업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건강식품이면서 한국인의 식단에 빠질 수 없는 마늘을 주재료로 삼고 있지만, 메뉴는 외식 트렌드에 맞는 이탈리안 푸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죠.
색다른 시도를 하는 이 기업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온라인을 통해 대표에게 직접 나를 소개하는 내용과 입사를 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의 적극적인 액션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고, 2년 여간 그곳에서 일했어요. 사실 한 기업의 대표에게 일해보고 싶다고 직접 제안한다는 것이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생각에만 그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해요. 행동하지 않으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당시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기에 홍보, 프로모션, 고객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경험은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미디어를 다루는 방법, 홈페이지 관리나 홍보 노하우 등을 깨칠 수 있었죠.
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면서 음식과 관련한 일은 분명 좋아하는 일이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분야지만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습니다. 또, 음식과 관련된 일은 왜 조리, 음식점 경영 정도에 국한되어 있을까. 왜 더 다양한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건강한 음식, 건강한 식문화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던 중, 슬로푸드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통해 내 몸뿐 아니라 환경까지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가서 슬로푸드 철학을 기본으로 한 음식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미식과학대학)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융합한 전혀 새로운 장르의 학문을 접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가치관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고,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 리포터 등으로 활동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요.
또 그간 쌓아둔 인맥을 통해서 강의 요청이 자주 들어왔습니다. 식문화, 식습관, 건강과 식생활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이러한 내용은 유학하면서 항상 고민하고 공부했던 터라 자신있게 할 수 있었죠. 문득 이 일이 내가 찾던 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 교육, 좋은 식문화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찾고 나아가서는 환경을 되살리도록 교육하는 것. 이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면서, 먼 곳까지 가서 치열하게 배우고 온 일이고,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요. 게다가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부모와 자녀의 대화단절,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 등 각종 사회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식생활 교육, 밥상머리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간의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었어요. 저는 이 일을 나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전공을 바꾸고, 미국과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야말로 나만의 일을 내 스스로 찾아낸 셈이에요.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현대 식문화에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으며 이뤄지던 밥상머리교육의 부재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이슈화 되고 있고 편리함과 속도 위주의 식품의 섭취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에 바른 식생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011년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학교, 단체에서 식생활이 점점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진행할 식생활 전문 교육 강사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관련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었죠.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간간히 들어오는 요청에 따라 강의를 하다가 남양주 시청의 제안으로 2년 여간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슬로푸드, 건강한 식습관과 관련한 교육사업과 행사를 기획하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곧 민간 차원에서도 수요가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가는 두려움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렵다고 안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바른 식문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개인적으로 결정력, 결단력이 있는 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바빠지고,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많지 않았죠.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 확신하는 일에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고 차근차근 일을 완성해 나가는 성향은 일을 완성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 음식과 관련된 푸드스타일리스트, 외식업체 마케터, 음식전문리포터 등의 다양한 경력과 경험들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부의 전공은 통계학이었지만, 학부 때부터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외식산업경영을 부전공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석사를 이탈리아 슬로푸드 대학인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에서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을 통한 음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음식전문 취재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꾸준히 글을 쓴 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회사를 홍보하는 데 필요한 보도자료나 회사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 칼럼을 쓰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죠. 푸듀케이터는 내가 1호니까,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푸듀케이터가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강의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짜는 일 외에 관련 내용으로 책을 쓰고 기고도 하는 직업인이지요. 저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앞으로 일을 하려면 스피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 과정을 듣기도 했어요.
지금 푸듀케이터로 대중 앞에서 강의를 하고, 한 회사의 대표로 언론이나 미디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이때 연습하고 단련한 덕분이라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내가 내 일을 찾아 나서기까지 모든 과정들은 ‘단련’이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원으로 일하며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는 것이었죠. 내가 스스로 내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미래가 핑크빛일지 아닐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 선례가 있지 않아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중들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여기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도 분명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과연 식생활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줄까? 밥상머리 교육, 미각교육의 필요에 대해 공감해줄까? 이런 생각이 계속되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 스스로 찾아내고 선택한 일이니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또, 이 일은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마인드콘트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비용을 따져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선택을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능력, 결단력,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중요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세 차례 지원했다가 한 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800만 원의 지원금(활동비, 사업비, 홍보비, 교육컨설팅비)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식문화 교육’이라는 주제가 새로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개 음식 분야에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제조업에 머물렀거든요. 검색하다 보면 청년층에게 지원금을 주는 여러 제도가 있는데요, 지원금을 받는 데에는 사업계획서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업계획서를 부실하게 작성하면 그 내용이 잘 전달될 수가 없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외국의 사례를 많이 수집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고, 전화로 문의를 하다 직접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탈리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인터넷으로 미국 사이트를 검색하다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슬로푸드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할 때에도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자료나 안내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관련 분야에 인맥을 얼마나 형성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그 직업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배경과 환경, 사회적으로 필요가 있어야만 일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회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내야 합니다. 무작정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일을 매치시켜야 겠죠. 저 같은 경우는 요리가 좋고, 음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회문제, 사회적 필요를 파악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습니다.
마침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인데 왜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을까? 내가 해야겠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겠다’ 이랬던 겁니다. 눈을 넓혀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좋은 직업을 떠올렸다면 그런 사례가 있는지,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직업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나 공부들이 어떤 것인지, 그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찾아 배우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 직업을 필요로 할 수요처에 대한 파악과 그것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인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음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경력을 쌓으며 맺어진 인맥과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직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 이 직업에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찾았고, 조직의 형태가 비영리사단법인이라고 판단하여 사단법인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풀무원이라는 식품회사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인정하고 관심을 갖고, 사업을 의뢰해 주었습니다. 제가 식생활 교육을 골자로 하는 교육업체를 만들려고 여기 저기 도움을 받을 곳을 알아보던 중, 희망제작소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마침 식품회사 풀무원이 희망제작소 쪽에 기업의 사회공헌 측면에서 ‘바른 먹거리 교육’을 하고 싶다고 자문을 구했고, 희망제작소가 중간 역할을 해서 제가 준비하고 있던 ‘푸드 포 체인지’(그때는 ‘푸룻’)가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교육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짜 기업이 큰 회사와 함께 실무를 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게다가 기업의 이런 이력도 좋은 홍보거리가 되거든요.-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이 직업이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남들에게 잘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스스로를 푸듀케이터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하자면 ‘식생활교육가’ 정도로 부를 수도 있었지만, 음식과 관련한 모든 영역을 다루며 이를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는 ‘식생활교육가’보다 푸듀케이터가 제한이 없습니다.
식생활교육가는 식생활에 국한된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물론 주된 내용은 그 부분일 수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고, 저는 그렇게 할 거거든요. 그리고 처음 이 직업을 접하는 사람이라도 직업명만 들으면 음식과 교육, 이 두 분야를 아우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는 험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의지가 중요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일, 혹은 구체화 되지 않았던 일을 전문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스스로가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국제 슬로푸드협회의 카를로페트리니 회장입니다. 여러 가지 교육과 캠페인, 이벤트 등으로 소비자의 의식을 개선하고 식문화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명사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확신하는 일이나 결심한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결과를 만듭니다. 결정한 일은 다시 고민하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식문화를 개선하여 바른 식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자인 제가 어린 나이에 세 차례나 외국에 나간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음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요리사, 음식점 창업 외에는 없어보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행동력, 다양한 경험은 창직에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고민을 많이 하면 실천에 행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직접 부딪쳐보고 좋고 싫음을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기회비용을 잘 따져 포기할 것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나눈 다음에 결단력 있게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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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요트레저운항사
민재홍 | 한국요트와 보트협동조합 홍보본부장
요트보트관련 직업 교육·훈련을 받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건강을 위하여 수영과 접한 것이 물과 친해진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수영대회에도 참가하고 스킨-스쿠버다이빙 등 많은 해양 레저 활동을 즐겨왔고 2013년 여름 무렵에는 친한 선배로부터 한강에서 윈드서핑을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생각같아서는 금방 배우고 싶었지만 개인적 일로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중 우연히 신문을 통해 요트로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김승진,윤태근 스키퍼)의 소식을 접한 후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회가 되면 꼭 나도 요트를 접해보겠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요트를 통해 뭔가를 이루겠다 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레저활동 정도의 관심이었습니다.직업으로 생각하시고 뛰어드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훈 련과정을 찾 아보던 중 우연한 기회에 ‘요트레저운항사’라는 직업인을 배출하는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고 김포마리나에서 실시한 훈련이었는데 2014년 12월 28일부터 시작하여 8주간 교육이 이뤄졌습니다. 교육을 통해 세계경제력 10위, 조선분야 1위라는 명예와 삼면이 바다와 접해있는 훌륭한 해양 친수조건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요트와 관련된 해양레저분야에서는 가까운 대만(요트분야 세계3위)보다 뒤떨어진다는 사실과 요트생산을 할 기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후 “내가 이 분야에 종사를 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또 수상레저분야는 제가 좋아하는 분야였고 그동안 직업인으로 쌓아놨던 이력과 접목 가능한 것이 교육 분야와 레저관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던 참이어서 제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과정 중에 수익창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실험을 하면서 노력을 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바로 실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소 생소한 분야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만큼 혼자였다면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8주간의 교육을 통하여 뜻이 통하는 동기생, 전문 강사님들 그리고, 현업에 뛰고 있는 초빙강사님들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드는데 많은 힘을 주셨습니다.신 직업은 취업처나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창직과정 중에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아직은 취업을 위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또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규제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트를 활용하여 레저관광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2015년부터 개정·공포된 「해양레저법 활성화 방안」 시행령을 보면, 차터업(임대업) 사업자 등록을 내려면 개인이 소유, 또는 임대 시 선령이 20년 이내, 5톤 이상이어야 합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조항입니다. 또한 사업을 위한 개인공유수면 확보측면에서 많은 조항이 폐지 되었지만 제가 계획하는 김포 아라 마리나를 기점으로 요트관련 관광업을 진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예로 들자면, 배를 소유 또는 임대하고 난 뒤 사업 진행을 위해 3년 이상의 계류장 선석확보 계약서를 제출하여 사업자등록증을 발부받아야 사업자로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해양수산부로부터 김포 아라 마리나를 위탁 경영하고 있는 워터웨이플러스의 경우 상급기관으로부터 허가받은 선석계약은 1년 이내로 정해지다 보니, 개인 차터업자 및 저와 같은 관광 레저업은 김포 아라 마리나에서 3년간 선석확보 계약이 불가함에 따라 개인 사업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일반인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해양레저산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협동조합을 결성하신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정부는 미래의 해양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2009년에 비전을 제시하며 전국 44개소를 마리나 개발지역으로 지정하였고, 2019년까지 1조 7000억 원을 투입, 전국에 200개소의 마리나 시설 개발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한국요트와보트협동조합’은 취약계층의 인재를 대상으로 요트운항, 관리, 정비, 딜러 등의 전문 지식교육을 제공하여 요트운항관리사를 배출하는 등 해양레제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공급 체재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또한 해양레저산업의 선진국인 유럽의 대중 요트문화를 “요트는 특별한 사람만이 즐기는 레저”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변화를 꾀하며, 쉽게 요트문화를 접하게 하기 위하여 수도권 해양레저, 특히 요트와 보트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서울마리나와 공동 운영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조합은 “커피 한잔과 요트”를 비교 대상에 두어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조합원이 중심이 되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레저문화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것이, 철저하게 대중화를 통하면서 부족한 일자리는 새로운 인력으로 채워서 고용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해양레저산업이 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알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우리 조합이 후배 예비 신직업인의 네비게이터가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다양하게 필드경험을 쌓으려고 몸소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새로이 입문하는 이가 취업을 원하여 문의를 해온다면 언제든지 멘토링이 가능하며 성공적인 전문인이 되도록 지켜보고 인도해 드릴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부터 실천하면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고 직접 발로 뛰고 해보겠다는 적극성을 갖고 필드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가면 반드시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을 만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매력이 분명히 있습니다.정부에게 바라는 지원 정책이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부가 신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정책을 세우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은 개선이 되었지만, 실제 운영을 위한 세부 지침이 바뀌지 않으면 진입장벽은 개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검토를 하시고 관련 기관과의 협조도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한국요트와 보트협동조합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중장년프로그램 교육을 통하여 배출된 뜻을 함께하는 동기생과 지도해주신 강사님,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우리는 서울마리나 공동운영을 통하여 요트문화 대중화, 취약계층 인재 재취업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 양성 및 해양레저산업 인력 제공, 기타 외국관광객을 적극 유치하여 여의도 한강일대를 요트관광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